'수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4.01 Papyrus
  2. 2008.05.05 It's just a definition. (2)
  3. 2007.04.02 수학의 왕 '가우스' (1)

Papyrus

오늘이 만우절이라지만, (그것도 방금 지인의 장난문자를 받고서야 알았다.) 어찌됐든 일요일. 그것도 출근 안하는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잉여짓을 하고 있었다. 
웹서핑에 그동안 밀렸던 웹툰도 다보고, 다운받아 놨던 쇼프로에 뜬금없이 다큐멘터리까지 보았는데.. 마침 봤던 프로가  '문명과 수학'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문명과 수학

정보
EBS | 월, 화, 수 21시 50분 | 2011-12-19 ~ 2011-12-27
출연
-
소개
‘세상의 모든 지식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 1858년 스코틀랜드의 고고학자 헨리 린드는 이집트 룩소 시장에서 낡은 파피루스 ...


관심있어 다운은 받아뒀으나, 왠지 쉽사리 손이 가지 않다가.. 간만에 휴식에 너무 잉여짓만을 해서.. 일말의 죄책감이 생겨 본 프로그램인데.. 뻔한 내용을 뻔하지 않게 (쉽게) 잘 설명하더라. 아주 좋았다거나 그런류의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았다. (이런 평적는데 별로 취미도 없고, 재주도 없어서. 원래 호불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니 이해를 해주시고..) 


그러다 1부 막바지에 이르러서 나오는 한 장면에 문득 옛생각이 났다. 


때는 바야흐로 파릇파릇 (?) 하던 20대에, 그러니까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얘기다. 

친하게 지내던 교포 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교포치고는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는 편이였지만, 그래도 어휘는 다소 부족했었다. 특히 미국 (혹은 외국어) 단어를 한국식 발음으로 표헌한건 당연히 뭔뜻인지 모르더라. 

어느날,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 친구에서 파피루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이 친구가 첨에는 뭔 말인지 못 알아 듣더라. 그래서 부연설명을 해주면서, 마침 옆에 있는 Papyrus라는 편지지나 선물용 카드 파는 매장을 가리키며, 저거라고 했더니.. 그 친구 입에서 나오는 말. 'pa·py·rus'[pəˈpaɪrəs/] (한글로 표시하면, 퍼파이러스 쯤 된다.) 라고 하더라. 얘기를 들을 당시 솔직히 부끄럽다거나 이런게 아니라, 오늘 좋은거 배웠다. 나중에 써먹어야지. 이러고 있었는데.. 이 생각을 계속 잊고 살다가, 그 다큐멘터리 마지막 부분에 진행자가 대영박물관에 가서 그쪽 큐레이터에게 아메스의 파피루스를 보여달라고 하고, 그 큐레이터가 영어로 막 설명을 하는데.. 퍼파이러스가고 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때 기억이 나더라. 그때 그랬었지 하면서.



(자, 이야기는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데, 매듭을 어떻게 지어야되나..)

사소한 실마리 혹은 메타포가 옛 생각을 종종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런건, 모두 지난 토요일에 심야에 '건축학개론'을 혼자 봐서 그런거다. (실제로 건축학개론을 보고 지난주 내내 굉장히 헛헛해 했었다. 꽤나.) 라고 해둬야겠다. 그거 본 뒤로 그냥 이런저런 옛일들이 자꾸 머리에 뒤엉켜 있다보니.. (역시 마무리가 안된다. 책임전가하면서 글의 마무리를 짓는 것도 굉장히 클리쉐하긴한데.. 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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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just a definition.

Therefore, no need to prove.

난 여태 몰랐다. 수학이란 원래 푸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 임을.. 

어떻게 하다보니, 대학원의 prerequisite에 걸려서 팔자에도 없는 수학과의 Linear Algebra를 듣고 있는데.. 교수가 자꾸 풀이와 함께 증명하라고 닥달 한다.
여보세요. 저는 수학과가 아니라, 전자과라구요. ㅡㅡ.

그래도 시키니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자명한 해'이다라고 쓰면, 왜 빨간펜으로 체크해서 돌려주는지..
내눈엔 이게 너무나 자명하단 말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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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왕 '가우스'

예전에 '수학산책'이란 수업을 들었을때 만들었던 레포틉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꽤 오래전 이야기가 됬네요.)
원래는 이걸 찾으려 했던게 아닌데 이것저거 뒤지다 이걸 찾아냈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그런 기분에 올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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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thematics is the queen of sciences and number theory the queen of mathematics.
She often Condescends to render service to astronomy and other natural of sciences, but in all relations she is entitled to the first rank.

  수학은 모든 과학의 여왕이며 수 이론(數論)은 수학의 여왕이다. 그 여왕(수학)은 겸손해서 종종 천문학이나 다른 자연과학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관계(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에서 그 여왕은 최고 자리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다.

-가우스(1777~1855): 독일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사자가 동물의 왕으로 일컬어지듯,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의 왕(Mathematical King)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18살의 나이로 수학계에 데뷔할 당시부터 거의 50년 이상의 기간 동안 항상 높은 수학적 수준을 유지했다. 그는 수론, 대수학, 함수론 미분기하학, 확률론, 천문학, 역학, 측지학, 유체정역학, 정전기학, 자기학, 광학 등의 순수수학과 응용수학 모두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그의 연구는 광범위해서 과학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의 업적은 19세기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또한 곡선에 대한 그의 연구를 통해서 일반 상대성 이론에 기초하고 있는 20세기 과학의 수학적 기반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287(?) ~ 211 or 212)와 영국의 뉴턴만이 그에 필적할 수 있다고들 흔히 말해질 정도이다. (혹자는 이들 셋을 일컬어 3대 수학자라 한다.)
 실제로 아르키메데스나 뉴턴의 작업들이 얼마 동안 학교 교육의 일부였으며 다소 일반적인 지식이었던 반면에, 가우스의 수학은 고등학교 교육 과정이나 대학의 기초 과정의 범위를 훨씬 뛰어 넘고 있다. 응용수학에 있어서의 대부분의 업적도 역시 기초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가우스는 1777년 4월 23일 독일의 브룬스빅(Brunswick)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계산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여느 수학의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수학공부를 즐겼다.
 하지만 재미난 것은 다른 수학의 천재들과는 다르게 가우스의 혈통에는 그의 수학적 두각을 나타낼 어떠한 배경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비단 직조기술자였던 그의 외숙부가 죽었을 때 그는 “세상이 한 천재를 일어버렸노라.” 라고 애석해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의 견해가 주관적이라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우스의 아버지 겝하르트 디트리히 가우스(Gebhard Dietrich Gauss)는 팔방미인이긴 했으나 석공, 정원사, 벽돌공 등 여러 일들을 전전했어야 했고 고지식한데다 난폭했다. 아들을 매우 거칠게 대했으며 가우스가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랬었다.
 오늘날의 가우스가 있기에는 어머니의 힘이 절대적으로 컸다.
 그의 어머니는 곧은 성품에 강하고 지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었던 아들이 총명함을 잃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평범한 일꾼으로 만들려는 남편과 싸워가며 가우스를 지켜냈다.
 가우스의 천재성을 이야기할만한 여러가지 재미난 일화들이 있는데 그 중 그가 3살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가우스의 아버지는 여러 노동자들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었는데, 어느 날 그들의 임금을 계산하고 있을 때 가우스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계산을 하고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할 때 가우스는 “아빠, 그 계산이 잘못되었는데요. 바른 답은 …예요” 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다시 검산을 했으며, 결국 가우스의 암산 결과가 옳다는 것이 밝혀졌다.
 노년에 가우스는 자신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는 "말보다 계산을 먼저 배웠다"라고 종종 말하곤 했는데, 대개 이러한 일화들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표현되긴 하지만, 그의 업적을 보면 그렇다고 농담만도 아니었던 것도 같다.
 이런 가우스의 10살 때 남긴 일화는 더욱 유명한데, 이 이야기는 수학계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가우스가 살던 18세기의 독일의 교육제도는 매우 엄격했었다. 당연히 선생님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이때 가우스를 맡았던 선생님인 뷔트너(J.G. Buttner)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학생들에게 혹독한 벌을 가하기로 악명이 높았고 게다가 은연중에 뽐내기를 좋아했었다고 한다. 이 선생님이 어느 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1부터 100까지 모두 더해라" 는 문제를 주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쩔쩔매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은근히 즐기고자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우스는 순식간에 답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정답이었다. 게다가 가우스는 그 반에서 가장 어린 학생이었는데, 1시간이 지나도록 가우스 외에는 아무도 정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때 가우스는 처음부터 전부 더하지 않았고 1+100=101, 2+99=101, 3+98=101, … 처럼, 앞쪽의 수와 뒤쪽의 수를 차례로 짝지으면 항상 101이 된다는 점에 착안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뷔트너는 적어도 가우스에게만은 따뜻하고 자상한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좋은 수학책을 함부르크에서 구해다 주기도 했는데, 가우스는 혼자 공부하면서도 빠르게 마쳐버림으로써 선생님을 비롯한 주윗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가우스는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수를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나중에 수학의 다른 분야도 두루 섭렵하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분야, 즉 수론(number Theory)을 평생 사랑했다. 수론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수에 관한 이론이지만 특히 정수를 주로 다룬다. 예를 들어 "소수의 개수는 무한하다", "소인수분해는 유일하다", 그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등이 수론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사실 말하자면 이는 수학에서 가장 오래된 분야인데, 어쩐 일인지 산만한 결론들만 나열될 뿐 제대로 된 체계를 이루지 못한 채 가우스 때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가우스는 18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24살에 펴낸 <정수론 연구>를 통하여 수론의 면모를 일신했으며, 이로부터 수론은 대수학 • 기하학 • 해석학 등 수학의 쟁쟁한 다른 분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어쩌면 수론은 너무나 심오하고 근본적인 세계였던 탓에 그 모습을 제대로 갖추어 드러나게 하는 데는 그에 걸맞은 천재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수론의 의의와 이에 대한 가우스의 애착 및 업적을 고려할 때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라는 그의 말은 충분히 수긍된다고 하겠다. (가우스는 수학뿐만 아니라 언어방면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그의 이러한 표현들은 당시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문예사조에 영향을 받은것이라 하겠다.)
 가우스는 <정수론 연구>를 완성한 다음 서서히 다른 분야로 연구 영역을 넓혀갔다. 그의 연구는 특히나 우리가 현재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수학의 원리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이론 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하게 기여한 주제들만 대략 간추린다면 오늘날 통계와 분석의 기초가 되는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와 최소제곱법(least square method), 실수와 허수를 포괄하는 복소수(complex number)의 개념, "n차방정식은 복소수의 범위 내에서 n개의 근을 가진다"는 대수학의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 복소수를 변수로 취하는 복소함수(function of complex variable)에 관한 이론, 천문학에서의 행성의 궤도 계산법 등을 들 수 있다. 다른 내용들은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이 행성의 궤도 계산법은 그의 논문 “최소 오차로 연결된 관측치의 결합에 대한 이론”을 통해 이전의 관측 오차 이론을 일반화 시키고 수학적으로 엄밀한 최소제곱법을 일반적으로 오차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가설과도 독립적인 관측법을 결합시키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분기하학(differential geometry)에도 큰 공헌을 했는데, 이는 그의 제자 리만(Bernhard Riemann, 1826~1866)이 계승하고 나중에 다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에게까지 이어져서 “빛의 속도(c)가 일정하므로 어떤 물체의 고유한 에너지(E)는 그 질량(m)에 비례한다.”는 우리에겐 “E=mc²” 으로 유명한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을 낳았고 후에 이것이 발전된 “중력의 속도와 빛의 속도가 거의 같다.”는 일반상대성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을 세우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이론들은 멀게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에서부터 가깝게는 GPS나 최근 정부에서 유럽연합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갈릴레오 시스템’등 현재 다방면에 걸쳐 응용되어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가우스의 업적을 자세히 열거하고자 한다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리하여 이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 인간이 이토록 다양하고도 높은 수준의 업적을 성취할 수 있단 말일까?"라는 의문이 솟구침을 느낀다. 이에 대하여 가우스 자신은 특유의 겸손함을 잃지 않은 채 "누구라도 수학에 나만큼 깊이 몰두했다면 마찬가지의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쉽게 수긍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에게는 역시 보기 드문 걸출한 능력들이 내재해 있었다고 봄이 옳을 것도 같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그 자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고도의 집중력을 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우스는 청년 시절 물밀 듯이 밀려오는 수학적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도 갑자기 말을 잃고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한번 붙든 문제는 정신력을 총동원하여 끝장을 볼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고, 여러 개의 문제가 동시에 떠오를 때도 차분히 대응하면서 차례차례 극복해갔다고 한다.
 어쨌든 위 가우스 자신의 말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듯 그는 인간적 풍모에서도 진정한 위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검소하게 살았고, 명예나 부귀를 탐내지 않았다. 한 친구는 이에 대하여 "그는 청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늙어 죽을 때까지도 단순하고도 검소하여 아무런 변함이 없었으며, 이것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우스는 자신이 미리 연구했던 것을 다른 사람이 나중에 먼저 발표하는 일이 많았지만 한번도 자신의 연구가 최초임을 인정해달라는 우선권(right of priority) 주장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나의 과학적 연구는 마음 속 깊은 곳의 부름에 따르는 것일 뿐이므로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은 부차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가우스를 더욱 드높여서 수학의 신(Mathematical God)이라고도 불렀는데, 어떻게 부르든 가우스의 이름은 수학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뚜렷이 기억될 것이다.

*. 참고문헌
Tord Hall, 1996, 수학의 황제 가우스, 경문사
김정희, 2002,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이야기, 동아일보사
신항균 外, 2000, 수학사와 수학이야기, 무지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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